관악이야기

제 목 유기홍위원장의 새로운 저서 [다시 김구를 부르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9 조 회 18
이메일 jsw999@hanmail.net


유기홍 위원장이 새로운 저서를 출간했다.
1948년 김구의 남북협상을 다룬 <다시 김구를 부르다>가 그것인데, 남북협상 70주

년을 맞는 올해, 특히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는 최근의 상황

에 비춰볼 때 큰 시사점을 던저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다시 김구를 부르다>의 서문이다.
 
 남북협상 70주년, 다시 김구를 부르다
 
판문점선언에서 김구를 보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오전 9시 30분

정각 판문각을 나선 김정은 국무위원정과 군사분계선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맞잡았다.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예정에 없이 깜짝 월경(越境)하는

광경은 생중계를 통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쟁과 분단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판문점이 평화와 화해협력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하나의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1948년 남북협상을 위해 38

선을 넘던 김구의 모습이다.

김구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

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

로 소회를 밝혔고, 김규식은 38선 푯말을 붙잡고 “이제 내가 짚고 있는 푯말을 뽑아

버려야만 하겠소. 그러나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고 온 겨레가 합심만

한다면 곧 뽑아버릴 수가 있을 줄 아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의 38선과 지금의 군사분계선이 다르고, 7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있었지만,

70년 전 김구가 분단을 막기 위해 절박하고도 결연한 마음으로 넘었던 분단선은 이

제 철거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올해는 1948년 남북협상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리기 꼭

70년 전인 1948년 4월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평양에서는 남북분단을 막고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남북협상이 열리고 있었다. 70년 전 1949년

4월 27일이면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의 이른바 4김회담 등 남북의 지도자들이

회담의 성과를 내기 위한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던 무렵인데, 남북의 정상들이 일부

러 날짜를 맞춘 것도 아닐텐데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1948년의 남북협상은 결국 분단을 막아내지 못한 채 실패와 좌절로 끝나고 말았지

만, 꼭 70년 후에 열린 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그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생

각한다. 필자는 1948년 남북협상이 외세에 의한 분단에 반대하는 민족자주성을 견

지했으며, 분단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고, 사상․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민족

적 단결을 시도하는 등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수립했으며, 이 3대 원칙이

야말로 이후 남북관계를 관통하는 정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되돌아보면 1948년 남북협상 이후 우리 역사는 남북 각각의 분단정권 수립, 민족상

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과 냉전적 대결, 이념적 대립 등 굴곡을 겪어 왔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아직 생

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고, 전

쟁을 잠시 멈추고 있다는 정전체제는 60년 넘게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1948년 남

북협상에 대해서도 긍정과 부정의 엇갈린 평가가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남북협상의 정신은 이후 남과 북 사

이의 여러 만남 속에서 되살아났다.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 1991년의 남북기본

합의서 채택,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의 10.4 남북정상선언 등이 그것

이며, 남북협상 70주년이 되는 올해,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개

선되었다. 평창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 특사단과 예술단 교환이 이루어졌

으며, 마침내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판문점선언이 채택되어 이제

평화와 통일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관계도 급속히 진전되어, 마치 롤러코

스터와도 같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어 한반도 비핵화에 대

한 합의를 이뤄내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60년을 넘게 이어져 온 정전체제를 해체

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큰 그림에도 뜻을 모았으니 무너지고

일그러졌던 우리 역사가 이제 제 자리를 찾아 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여기서 다시 38선 위에 외롭게 서있는 김구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이제 ‘화

해협력과 평화를 통한 분단체제의 해체’라는 대단원을 향해 치닫는 역동적인 이 역

사의 시작점에 외롭지만 결연하게 서 있는 김구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서 남북협

상 70주년이 되는 지금, 다시 김구를 목놓아 불러 본다.

 
통일로 가는 유일한 길, 협상을 통한 통일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1948년 남북협상의 지도자협의회에서 채택한 4개

항의 공동성명 중 제3항에 통일방안 및 경로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분단의 위기를

턱 밑에 둔 절박한 순간에도, “단선(單選)․단정(單政) 반대”만 외친 것이 아니라 통

일방안에 대한 합의까지 이뤄낸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김구를 비

롯한 남북협상 주역들의 혜안에 감탄할 따름이다(본문 제3장의 2. ‘평양의 김구’ 참

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

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

가기로 하였다”는 합의가 있었으며,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보아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가는 데 있어 크게 3가지 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비평화적 방법을 통한 길이다. 역사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많은 경우 전쟁과

침략을 통한 통일 시도들이 있어 왔으며 이 경우 파괴와 살상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과거 남측의 북진통일론이나 북측의 혁명전쟁론이 그것인데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 되었다. 재래식 무기만이 아니라 핵과 미사일, 주변 강대국 전략무기의 위력

을 생각해 볼 때 비평화적 방법은 남북의 공멸과 한반도 전체의 초토화를 가져올 뿐

이다.

두 번째는 흡수통일의 길이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정치․경제․군사적으로 흡

수하는 방법인데, 우리보다 월등한 국력을 가지고 있던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이후 겪었던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갈등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흡수통일은 재앙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남과 북은 끊임없이 ‘평화’를 주장하고 합의해 왔으며, ‘흡수통일 배

격’ 원칙에서도 뜻을 같이 해 왔다.

전쟁과 흡수통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바로 협상을 통한 통일이다.

남북의 화해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공존공영하면서 궁극적으로

협상을 통한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과 91년의 남묵기본합의서와 1992년

부속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의 합의정신과

다양한 사회문화교류 및 경제협력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필자는 이 책에서 통일을 향한 유일한 길은 협상을 통한 통일이라는 전제 하에.

1948년 남북협상이야말로 협상을 통한 통일 노력의 역사적 원형(原形)이라고 주장

한다. 이것이 바로 평화와 통일로 가는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다시 1948년 남북

협상을 되돌아보고, 그래서 다시 김구를 소리쳐 부르는 이유이다.

 
이책은 필자의 2017년 북한대학원대핚교 박사학위 논문 “김구의 남북협상과 민족

자주통일론 연구”(『38선 위의 김구』로 미래엔에서 출간)를 보다 많은 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새롭게 작업한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김구를 비롯

한 민족지도자들의 생각과 결단 속에서 교훈을 억고자 함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

들이 김구를 더욱 친숙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이 책을 1950년 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한국전쟁 과정에서 납북되어

1986년 평양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바치고자 한다. 분단과 전쟁의 최대 피해자

 중 한 사람인 할아버지의 묘소는 아무 연고도 없는 평양 룡성구역에 있고, 평생 할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다 1994년 돌아가산 할머니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 선산에 모셔

져 있다. 두 분을 한 데 모셔 합장하는 날이 바로 통일의 날일텐데 곧 그 날을 기대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책이 출간되기까지 큰 영감을 주신 여러 선학(先學)들과 수고해 주신 미래엔 관계

자들께 감사드린다. 또 군시렁거리면서도 바쁜 틈을 쪼개 오탈자를 잡이내고 문장을

다듬어 준 아내 양애경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8년 6월 통일의 문이 열리는 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