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이야기

제 목 관악구 유,무형문화재, 전통사찰
작성자 유기홍의원실 작성일 2003-08-07 조 회 1209
이메일 youngkor@naver.com
* 유형문화재


◈ 낙성대 유지(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
소재지 : 관악구 봉천7동 218-14호

고려의 명장 인헌공 강감찬 장군(948-1031)이 태어난 집터이다. 태어난 날 하늘에서 큰별이 떨어졌다 하여 그 생가의 터를 '낙성대'라 했다. 그곳에는 고려시대의 사리탑식 3층석탑이 있어 낙성대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1973년 낙성대를 정화하면서 이 석탑을 안국사 경내로 옮기고 그 자리에는 1974년에 따로 높이 2m의 유허비를 세워 유서 깊은 사적지임을 표시했다. 따라서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를 성역화한 곳은 낙성대이지만 장군이 태어난 곳은 유허비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현재 낙성대 동북쪽에 위치한 봉천7동 218번지 14, 19호 일대이며 대지면적은 33평으로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 낙성대 3층석탑(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소재지 : 관악구 봉천7동 228호

봉천7동 228번지 안국사 경내에 강감찬 낙성대라 새겨져 있는 사리탑식의 3층 석탑으로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봉천동 218번지 집터에 있었으나 낙성대 공원 조성시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 석탑의 조성연대는 고려시대(13세기경 추정)로 자재는 화강암이며 탑의 높이는 4.48m.


◈ 마애미륵불(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
소재지 : 관악구 봉천11동 산4-2호

관악산 북쪽 중턱에 서향하여 우뚝 솟은 거대한 절벽 바위면에 얕은 도드락 새김으로 조각된 조선시대의 미륵불 좌상. 낮은 육계, 소방의 머리칼, 다소 풍성하게 보이는 갸름한 얼굴 등은 상당히 우수한 기법을 보여준다. 이는 늘씬한 체구나 타원형의 어깨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17세기 불상으로서는 뛰어난 솜씨로 조선조 조가사편년 설정에서 절대적인 자료가 되며 또한 미륵존불이라는 명문은 확실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조 사회에도 미륵신앙이 상당히 유래되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 마애미륵불은 17세기 조선조 불상을 대표하는 기준이 될 만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 강사상신도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4호)
소재지 : 관악구 신림13동 산107-2호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세워진 정정공 강사상(1519∼1581)의 신도비. 선생은 1543년(중종 3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년) 식년문과에 병과급제하여 한림이 되어 수 많은 관직을 거쳐 우의정과 영중 추부사를 지냈으며, 사후 아들 인이 호성공신에 책록되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선생은 강홍립 장군(1570∼1627)의 조부로서 1561년에 명나라 성절사, 1568년 명나라 성절사, 사신 원접사, 1570년 명나라 주청사로 활동하는 등 외교에 역할이 컸으며 평상시 국가의 치란은 천운에 있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정쟁에 초연하였다. 신도비문은 권유가 짓고 본문은 이진검이, 제목은 권규가 썼다.


◈ 이경직신도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5호)
소재지 : 관악구 남현동 산57-10호

조선 현종 9년(1668년)에 세워진 효민공 이경직(1577∼1640)의 신도비. 선생은 백사 이항복과 사계 김장생의 제자로 1605년 식년시와 증광별시에 잇달아 합격한 후 전시에 응시하여 승문원에서 처음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강화유수로 있다가 병사할 때까지 도승지, 호조판서 등 많은 관직을 거쳤다. 1617년(광해군9년) 일본에 회답사의 종사관으로 다녀오고, 1642년(인조2년) 이괄의 난 때 전라절도사로 공을 세우고, 1627년(인조5년) 정묘호란때 병조참판으로서 후금국 사신과 교섭하여 화의를 성립시켰다. 신도비문은 김류가 짓고 글은 삼남인 정영이 썼으며 공의 묘소는 이 묘역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 백제요지(사적 제247호)
소재지 : 관악구 남현동 538-1호

면적 661.16㎡(200평) 규모의 백제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요지는 발견당시 채집한 격자문 토기편들로 미루어 백제시대의 가마터로 확인되어 1976년 4원 10일 사적 247호로 지정되었고, 가마는 파괴되어 있으나 한강변에 있는 백제토기 가마터로는 유일한 것이다. 한강변의 바람드리토성·곰말토성·삼성산성·강 건너 야단산성 그리고 백제 돌무지 무덤·방이동 고분군등과 아울러 주목되는 유적지로서 백제시대 문화 및 삼국시대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유지인 밭에 위치하고 있는 이 가마터는 현재 발굴되지 않은 상태로 보전되고 있으며 약 200평 면적에 흑토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있는 곳은 신라토기의 요지로 추정된다.


◈ 구 벨기에 영사관(사적 제254호)
소재지 : 관악구 남현동 1059-1, 3호

남현동 남부순환로변의 길가 사거리 가까이 있는 건물로서 1900년 5월 우리나라에 온 벨기에 전권위원인 방카르에 의해 1903년 착공하여 1905년에 준공된 건물로 원래 지어진 곳은 중구 회현동 2가 72번지 2호였으나 198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1919년 벨기에 영사관이 이전하면서 일본 요꼬하마 생명보험회사의 사옥이 되고 일본 해군성 무관부의 관저로, 해방 후에는 해병 헌병대 청사로 사용되었다. 1970년 상업은행에 불하된 후 1982년 9월 10일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현재 한빛은행 사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벽돌과 석재를 혼용하면서 현관과 발코니의 이오니아식 석주 등은 독특한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신림동 굴참나무(천연기념물 제271호)
소재지 : 관악구 신림13동 721-2호

신림동 굴참나무는 참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이며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1.9m가량 되는 노거수로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로 지정.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에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서 현재와 같은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인근에는 장군이 별당으로 사용하였다는 칠불사가 있으며 수령은 약 1,000년 정도로 추정한다. 그리고 연2회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 수명보존(목신)과 동리의 평안을 위하여 고사를 지내고 있다.


◈ 구 보호수

보호수란 노목, 거목, 희귀목으로서 명목, 보목, 당산목, 정자목, 호안목, 기형목, 풍치목 등 보존가치나 증식 가치가 잇는 수목을 말하는 것으로 관악구에 소재하는 보호수는 다음과 같이 세 그루가 있다. 느티나무(동 나무 제37호) 봉천1동 715-20호에 위치한 정자목으로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5.3m이며 수령은 약 300여년으로 추정. 느티나무(동 나무 제28호) 남현동 519-2호 관음사 입구에 위치한 풍치목으로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5.7m이며 수령은 약 300여년으로 추정. 느티나무(동 나무 제39호) 신림3동 697-40호에 위치한 정자목으로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5.2m이며 수령은 약 350여년으로 추정.


* 무형문화재

◈ 향온주
◎ 기능보유자 : 정해중
◎ 종목 : 시도무형문화재 9호
◎ 분류 : 음식과 무예
◎ 지정일 : 1993년 2월 13일
◎ 주소 : 서울 관악구 신림동 10-10 신안A 나/104호

향온주는 멥쌀과 찹쌀로 빚은 맑은 술로, 조선시대 양온서라는 관청에서 빚어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던 전통 궁중주이다. 향온주를 빚을 때는 궁중어의들의 관리 아래 항상 어의들이 처방을 내려 빚었고,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헌인『고사촬요』,『규곤시의방』에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누룩 만드는 법이 특이한 것이 특징이다. 녹두와 보리, 밀을 섞어 빻아 누룩을 만들고 일주일 동안 밤이슬을 맞혀 누룩 냄새를 없앴다. 발효가 끝나고 덧술을 여러 번 거치고 한달 가량 후숙을 하고, 소줏고리에 넣어 증류시킨다. 증류가 끝나서도 옹기항아리에 넣어 보관시켜 6개월 간 마셨다. 현재 기능보유자 정해중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 대금정악
◎ 기능보유자 : 김응서
◎ 중요무형문화재 20호
◎ 분류 : 음악
◎ 지정일 : 1968년 12월 21일
◎ 주소 : 서울 관악구 봉천1동 662-29

정악(正樂)이란 궁정이나 관아 및 풍류방(각 지방의 풍류객들이 모여서 음악을 즐기던 장소)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우아하고 바른 음악이란 뜻이다. 대금정악은 정악을 대금으로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금은 신라 삼죽의 하나로, 삼죽(三竹)이란 대금, 중금, 소금을 말하며, 이름 그대로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 중에서 가장 긴 것으로 '저' 또는 '젓대' 라고도 한다. 쌍골죽(雙骨竹)이라는 속이 찬 대나무 밑둥으로 만드는데, 왼쪽은 막혀있고, 위 첫마디에 입김을 불어넣는 구멍이 있다.

그 조금 아래에는 갈대 속으로 만든 얇은 청을 대는 청구멍이 있고 다시 그 아래로 구멍이 여섯 개 뚫려 있다. 주법을 보면 은은한 소리가 나게 낮게 부는 저취(低吹)와 청아한 소리가 나게 세게 부는 역취(力吹)가 있다. 다른 악기에 비해 음량이 풍부하고 음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서 국악기 중에서 대표적인 독주악기로 자주 쓰인다. 대금정악은 궁정음악계통인 아악곡(나라의 의식 등에서 정식으로 쓰던 음악)의 전부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 합주음악에 속하며, 본래부터 독주로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부터 독주로 연주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곡목으로는 청성자진한잎, 평조회상, 자진한잎 등이 있다. 대금정악은 영롱하나 가볍지 않고 부드러우나 유약하지 않으며, 섬세하나 천박하지 않은 오묘한 맛의 가락을 지닌 전통음악으로, 그 가치가 크며 예능보유자로는 김응서가 인정되었다.


* 전통사찰

◈ 관음사
소재지 : 관악구 남현동 519-3호

관악산 주봉에서 북동쪽으로 뻗어있는 마지막 봉우리의 기슭에 위치. 신라 진성여왕 9년(895년) 도선대사가 창건한 비보사찰의 하나로 천여년의 세월과 더불어 기도의 도량으로 성쇠를 거듭하다가 1924년 주지 석주가 중건하였고 1974년 진선당 종하사가 주지로 부임하여 또 중건하기 시작하여 대웅전, 용왕각, 종각, 즉 심시불의 비문석탑을 세워 1977년에 준공 지금의 절이 되었다. 관음사 입구에는 수령이 약300여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 자운암
소재지 : 관악구 신림9동 194-1호

서울대학교 골짜기 중턱에 위치하며 무학대사가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창건하였다. 자운암은 600여 년을 지나는 동안 여러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러 남허스님이 남긴 자운안 기록에는 영조 13년(1734년)에 다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성종이 어머니를 위해 만든 위패가 아직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또한 창건 당시에는 자운암(紫雲庵)이라 하던 것을 영조 13년에 대효선사가 자운암(紫雲庵)이라 개명하였다. 현재의 자운암은 1976년 보륜 스님이 자운암에 들면서 대웅전, 칠성전, 산신각을 세우고 비로소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 약수사
소재지 : 관악구 신림 10동 318번지

신림10동 주택가 산기슭에 있는 사찰로 보통 약수암으로 불린다. 세종대왕 때 무명대사가 창건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50년 김처사가 이곳에 샘솟는 약수를 마시고 힘을 얻어 새로 건립하여 약수암이라 칭했다. 최고의 창건은 신라시대 문무왕 10년(670년)이며 현재처럼 절로써의 면모를 갖춘 것은 1974년 겨울, 묘희 스님이 약수사에 들면서부터이다.

<출처 : 관악구청 홈페이지>